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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사회적 책임 다하라”
변호사들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익활동을 하는데도 세간의 시각이 쉽게 호의적으로 변하지 않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변호사들이 많다. 굳이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을 때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변호사가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끼지않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대한변협 협회장 출신으로 공익사업에 투신해온 이세중 대한변협 인권재단 이사장을 만나 변호사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변협 인권재단은 대한변협이 설립한 ‘인권재단’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권재단’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변호사의 사명이 사회정의 실현, 인권옹호이지만 이제까지는 협회 또는 개별적, 개인적 차원에서 공익적 소명을 다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왔습니다. 협회가 공익적 재단을 구성하여 변호사의 이런 공익활동을 집단화, 지속화하고 사회적으로 도움도 받기 위해 재단으로 만든 것입니다. 변호사 단체의 한계가 2년마다 집행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년마다 인권지원 활동 방향이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사람에 따라, 집행부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활동이기보다 좀 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활동으로 변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올바로 갖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이 확립된 사회’를 위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듬는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변협 인권재단의 비전이고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변협’이라는 바운더리가 좁고 협소하다고 여겨지진 않으셨나요?
인권재단은 변협에서 출발했지만 변호사들만의 재단이 아닙니다. 이사회의 구성도 언론계, 학계 등 사회인사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북한인권, 국제인권에 대한 경험과 경륜이 필요해 전 통일부 차관도 참여하고 있고요. 변호사들 손에서 탄생했지만 사회 저변으로 확산시켜나갈 것입니다. 운영, 활동은 각계 인사의 참여 속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권에서는 보편성 존중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정 분야에 국한된 인권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이의 시정과 개선을 위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정치적 이유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인권은 인종, 종교, 이념을 초월한 권리입니다. 이제까지 소홀히 여기고 금기시해왔지만 이에 대해 말하고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권재단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군요. 5월 23일 ‘북한인권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그 취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인권세미나를 기획하고 있지만 인권상황에 대한 조사 자체에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제는 ‘북한 주민의 알 권리’입니다. 북한도 분명히 UN 인권규약 가입국이고 알 권리는 인권의 가장 기본입니다. 인터넷과 정보매체가 이렇게 발달한 사회에서 알 권리가 이렇게 통제되니 기본적 인권이 무시되는 겁니다. 우리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도 북한주민의 알 권리가 꼭 보장되어야 합니다. 독일 통일을 위한 밑거름이 바로 서독에 대한 정보가 동독에 퍼질 수 있었던 것이죠. 또 북한 인권을 말할 때는 경제적 지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제적 활동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은 정말 인권의 기반입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일도 제가 열심히 했었는데요, 식량지원을 통해 굶어죽는 사람은 없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북한 산림 복구를 돕자는 취지의 ‘평화의 숲’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산림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관광객을 받는 금강산, 묘향산 정도에만 나무가 있는 정도죠. 식량증산을 위해서도, 홍수를 막기 위해서도 더 이상의 황폐화를 막기 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묘목도 보내고 농기구도 보내고 했는데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도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각도의 활동이 꼭 필요합니다.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후에 통일은 그 이후가 더욱 힘들게 됩니다.
2011년의 주요 인권사업을 인권단체 등을 통해 공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년도의 역점사업은 무엇인지요?
올해 초에 정식 발족한 이후 사업확대를 하기엔 재정적 기반이 많이 약합니다. 현재 주어진 여건하에서 최선을 다할 방도를 찾아나갈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권상황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 가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많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국민은 빈곤가정에 대해서는 최저생계비 지원이나 차상위계층 지원 등이 이뤄지지만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에도 어려움 속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각 관련 단체로부터 사업지원서를 받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사회의 화합과 안정에 큰 위협요소가 될 것입니다. 나만 평화롭다고, 풍요롭다고 행복한 게 아니고 사회전체에 풍요가 돌아가야 평화로워집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역임하셔서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기금모금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노하우가 있을까요?
제가 공동모금회에서 1년에 약 3천억 원까지 사랑의 성금을 모아봤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기부’가 ‘사회복지’에만 치우쳐져 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 이외에도 다른 좋은 일을 하는 단체에도 기부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회공익활동을 하는 단체들의 ‘사업실적’이 가시적으로 축적되지 않으면 재정문제로 상당한 곤란을 겪습니다. 변호사들이 사회공익적 활동에 참여, 사회적 존중을 얻으려면 헌신적 참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준법지원인 제도가 좋은 제도인데 왜 그렇게 역풍을 맞는지 아시겠습니까? 변호사들이 사회공익을 위해 헌신해온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나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국민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인권재단에 대한 변호사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인권재단 이사장 등 전 변협 협회장으로서 공익적인 일들을 선구적으로 해오고 계십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히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들었던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관용을 베풀라’는 기독교 교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세중 이사장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공명선거실천시민연합 등 다각도의 공익단체 활동을 해온 우리나라 NGO 1세대이다. 그가 2007년 한 일간지에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으로서 기고한 글을 보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에너지는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의 하나가 되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규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적정 수준의 에너지 사용권 보장은 에너지 기본권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선진국 평가 기준으로 그 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을 중요한 잣대로 삼을 정도다.…중략…단전 끝에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참변을 당하는 일이 다시는 우리 이웃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변협 협회장 재직 시에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제가 임기를 시작한 때가 군사정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막 들어선 시점이었습니다. ‘법조개혁’이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되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변호사 단체의 대표로서 법원, 검찰에 대해 권위주의 정권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했습니다.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기를 요구한 것이죠.
입각 제의나 총리 제의 등을 번번이 거절하셨죠.
어느 당에서 오는 제의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하하. 일단 한 번 가면 이상을 실현시키기보다 잘못된 풍토에 젖어들 것 같아서였습니다. 가서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제게 맞는 일을 한 것일 뿐,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평화롭고 건강한 것이 훨씬 소중한 가치입니다.
여전히 사회 활동이 왕성하십니다. 하고 계신 다른 일이나 계획 등을 좀 말씀해주세요.
환경재단 이사장, 평화의 숲 이사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다른 NGO 일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대한변협 인권재단을 통해 소외계층을 돕고 인권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 미력하나마 보태겠습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앞에서 한 얘기가 전부 후배들에 대한 충고의 말입니다. 변호사들은 자기 이익에만 치우쳐 ‘사업적 성공’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이웃의 존경을 못 받는 성공입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나눔’을 통한 성공을 배우기 바랍니다.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헌신할 때 직업에 따른 존경까지 따라옵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사회참여에 나서길 권면합니다. |